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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들/해외- Abroad

조선인 추모비 철거, 일본 군마현 강제징용,연행된 조선인 부정

by lambba- 램바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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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추모비 철거, 일본 군마현 강제징용, 강제연행된 조선인 부정

군마현에 만들어진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는 일본 시민단체가 한국과 일본의 우호증진을 위해 만든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군만현에 이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이 6천여명 된다고 한다. 
이 비석을 세울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다행스런것은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이 자발적으로 만든것인데
비석 내용엔 조선인에게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에 반성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2004년에 설치한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는 정치적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추도식에 "강제연행" 이란 말을 공식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약속을 어겼다며 철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어떠한 의사표명도 없었고, 유감의 뜻을 밝히지도 않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문제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 다고들 하는데...

 

아래 내용은 일본 산케이신문에 실린 내용을 정리했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쓴 편이다. 


군마현이 다카사키시에 있는 현립공원 '군마노모리' 내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를 철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비석 소유 단체가 규칙을 어기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열리던 추도식에서는 참가자들이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해왔다. 이는 공원의 중립성을 위협하는 약속 위반이며, 현이 비석을 철거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이 비석은 전쟁 중 현내 공장 등에 징용돼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가쿠다 요시이치(角田義一) 전 참의원 부의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전신인 '추도비지키기회(追悼碑を守る会)'가 헤이세이(平成)년 건립한 것이다.

법령에 의한 징용은 과거 대전 당시 많은 나라에서 이루어졌으며, 부당한 강제노동이 아니다. 내지의 국민도 징용되었다. 따라서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동회가 처음 작성한 비문 원안에는 '강제연행'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일본 비판이 두드러지는 내용이었다. 이에 현은 수정을 요구했고,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비석 설치를 허가했다.

이 설치 조건은 현립공원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추도식에서 정부 비판이 반복되는 것이 확인되자 현은 2015년 비석 설치 허가 갱신을 불허했다. ⧏33⧐ year ⧏35⧐ 년 ⧏34⧐

이 단체는 현의 조치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인 마에바시 지법은 이 단체의 주장을 인정했지만, 2심인 도쿄 고등법원은 "추도식에서 '강제연행'이라는 문구를 포함한 정치적 발언이 있어 비석은 중립적 성격을 잃었다"며 이 단체의 청구를 기각했다. ⧏33⧐ Tokyo High Court ⧏35⧐ 도쿄 고등법원 ⧏34⧐ 그리고 2020년 대법원에서도 이 단체의 상고가 기각돼 현의 승소가 확정됐다.

현은 이 단체에 비석 철거와 원상회복을 명령했지만, 이 단체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현은 행정대집행으로 비석을 철거했다. 야마모토 이치타 지사는 "규칙을 어긴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회나 아사히신문의 사설은 "이해할 수 없는 폭거"라며 현을 비판하고 있지만, 설치 조건을 어긴 것은 동회다. 대법원 판결로부터 1년 반 이상이 지났지만, 규칙과 사법적 판단을 따르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철거는 폭거'라는 비판은 전혀 맞지 않는다.

https://youtu.be/NRwpZH33VMI?si=_BU6tYUU2tQSHc9a

 

群馬県が、高崎市にある県立公園「群馬の森」内にあっ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撤去したことは当然である。なぜなら、碑の所有団体がルールを破り、政治的に利用していたからだ。

毎年行われていた追悼式では、参加者が「強制連行」という用語を使い、日本政府に謝罪や賠償を求める発言をしてきた。これは公園の中立性を脅かす約束違反であり、県が碑を撤去したのは当然の措置である。

この碑は、戦時中に県内の工場などに徴用され、事故や病気で亡くなった朝鮮人労働者を悼むために建てられたものであり、角田義一元参院副議長らが共同代表を務める「追悼碑を守る会」の前身団体が平成16年に建立したものである。

法令による徴用は先の大戦時に多くの国で行われ、不当な強制労働ではない。内地の国民も徴用されている。したがって、日本政府の立場では、「強制連行」という表現は適切ではない。

しかしながら、同会が最初に作成した碑文原案には「強制連行」という用語が使われ、日本批判が目立つ内容であった。そのため、県は修正を求め、「政治的行事を行わない」ことを条件に碑の設置を許可した。

この設置条件は、県立公園の中立性を保つために非常に重要なものであった。しかし、16年から24年の間に追悼式で政府批判が繰り返されたことが確認され、県は26年に碑の設置許可の更新を認めなかった。

同会は県の措置を違法として提訴したが、1審の前橋地裁は同会の主張を認めたものの、2審の東京高裁では「追悼式で『強制連行』という文言を含む政治的発言があり、碑は中立的な性格を失った」として同会の請求を棄却した。そして、令和4年の最高裁でも同会の上告が棄却され、県の勝訴が確定した。

県は同会に対し、碑の撤去と原状回復を命じたが、同会はこれに応じず、県は行政代執行によって碑を撤去した。山本一太知事は「ルールに反したことがすべてだ」と述べた。

これに対し、同会や朝日新聞の社説が「理解できない暴挙」と県を批判しているが、設置条件を破ったのは同会である。最高裁の判決から1年半以上が経過し、ルールと司法判断に従わない状態が続いていた。したがって、「撤去は暴挙」という批判はまったく当た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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